토요일(9월29일)에는 우리당 식구들이
인천 연수구에 나들이를 갔다.
지난여름 인천 연수구의 황우여 국회의원 지역과
우리지역이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 교류하는 차원에서
답방하였다.
송도지역의 자유무역 특구의 개발 현황을 견학하였는데
그 규모와 크기에 정말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앞으로 송도의 발전은 물론 한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것임이 자명 하게 드러나 보여서
한편으로는 부러움이 앞섰다.
박병운 할아버지가 울먹이고 계시다.
다음으로는 인천 적십자 병원 내에 세워진
사할린동포 노인복지회관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뜻밖에 우리지역 출신 박 병운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이제부터 간단하게
그 할아버지의 기막힌 사연을 들려 드리고져 한다.
박 병운 할아버지는 태안 이원면 내리 출신으로
23세 때에 징용으로 끌려가 일본을 거쳐 사할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2년여 머물다가 어렵게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건설사업도
제법 규모 있게 하여돈도 많이 벌었다고 하였다.
모스크바 여인과 결혼도 하여 자녀 한명을 두었었는데
잃고 말았고 소련인 아내도 이미 별세하여
혈혈단신 이자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평생소원이던 꿈을 이루게 되어 돌아오게 되었단다.
평생소원이 고국 땅에서 묻히는 것이라서
올해에 귀국 하였는데 혈족을 찾지 못하고 계셨다.
아침부터 우리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내내 들떠 계셨고 넥타이 정장차림을 하시고
기다리고 계셨다고 하였다.
마침 이원면의 당 책임자 분이 동승하여 계셨기에
그분과 만나게 해드리니 연신 눈물을 흘리시며
또렸하게 기억하시며 줄줄이 과거사를 털어놓으셨다.
그래서 모든 인적사항을 적어가지고 돌아와서 당책임자분이
수소문 끝에 마침내 그 다음날에 형수를 찾으셨다.
그래서 우리당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박할아버지를
모셔다가 고향도 구경시켜드리고 형수와도 극적인
상봉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나의 마음은 너무나 착잡하고
그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 일본인들에게 잔혹하게
혹사당하며 자식들은 훌륭하게 키워 모스크바
대학출신도 있고 의사도 있으나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고 고국이 그리워 떠나오신 분들이라고
이주자 복지원 원장님의 소개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사신다고 하셨다.
젊어서는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를 그리워했고
늙어서는 두고 온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사신다고 하였다.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한국정부에서 잘 보살펴 주어서
편안하게 잘 지내서 고맙다고 연신 내손을 붙잡고
말씀하셨지만자식들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런지....
사할린 노인복지 시설은 일본정부가 보상 차원에서
건물과 시설을 해주었고 한국정부가 노인연금을 지원해주고
적십자에서 운영을 하고 있었다.
황우여 의원님을 비롯한 한나라 당원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가슴 찡한 감동이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도록 머물 것 같다.
우리 서산 지구당도 앞으로는 여성위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실시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해본다.
2007년 9월 30일에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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