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HEALTH CARE)
1월 25일, 빌은 힐러리와 손님 두사람을 불러 그 의 서재에서 점심을 같이하자고 했다. 한사람은 국내 정책고문으로 임명된 캐럴 래스코(Carol Rasco) 또한사람은 그의 오랜친구로 의료보험 비용에 대한 연구를 한 아이라 매거지너 (Ira magaziner) 였다. 빌은 몇 시간 후에 "의료 개혁 특위"를 만들어 취임 100일 안에 개혁안을 내 놓을것임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빌은 힐러리에게 특위 위원장직을, 그리고 아이라에게 담당 보좌관과 기획 작업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빌은 새로운 각도에서 의료개혁에 접근하고 싶어했고 아이라는 뛰어난 지성과 창조적 사고력을 가져 문제를 독창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찾아내는 요령을 가졌다. 국회의 중진의원들은 100일 안에 의료 개혁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에 현실성이 없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아이라는 의료개혁안이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고 국회를 통과 할수있는 일괄 법안을 만들려면 적어도 4년 또는 5년이 걸릴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빌은 그의 계획을 추진 해야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의 계획을 어떻게하든 성공 시킬것을 결심한다. 이유인즉, 급증하는 의료비는 국가 경제를 어렵게 하고 미국의 경쟁력 약화, 노동자의 임금을 깍아먹고, 개인 파산을 증가시키고, 국가의 예산 적자를 팽창 시키기에 의료개혁은 시급한 문제였다. 20 세기가 시작된 이래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의료개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여러모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디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과 진보당 지도자들이 거의 1세기전에 의료보장을 제안한 최초의 사람들이었고, 플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뉴딜정책 (New Deal)의 초석인 사회보장제도의 보완책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구상했다. 투르먼(Truman) 대통령은 훼어딜( Fair Deal) 정책으로 전국민 의료보장 이라는 공약을 채택하였다. 1965년에 존슨(Johnson)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를 제창하며 두 소외계층( 빈민층과 노인층)을 연방기금으로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메디케이드(빈민층에 의료보장제도) 와 메디케어 (65세이상 노인층에 의료보험제도)를 만들었다. 트루만 대통령의 목표를 실현한 존슨의 이 업적은 아직도 20세기 의료분야에서 거둔 최대의 성공으로 남아있다. 닉슨(Nixon)대통령은 고용주는 종업원에게 제한된 액수의 의료수당을 지급하는 법안을 만드는것 이외에 무려 20여 가지의 의료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 하였지만 1994년까지 한번도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공화당의 포드(Gerald Ford) 대총령과 민주당의 카터(Jimmy Carter) 대통령도 70년대에 의료개혁을 추진했지만 그들도 정치적 걸림돌에 부딪혀 실현을 못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볼때 빌은 승산이 없었지만 그의 선거공약을 이행할 정치적 의지를 국민과 의원들에게 보여줄 의지가 있었고, 의료 개혁은 수백만 미국인에게 도움이 될 훌륭한 공공정책일 뿐만 아니라, 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이기에 안할수가 없었다. 빌과 아이라, 캐럴과 힐러리는 각료들과 수석참모들 그리고 기자들이 "특별위원회"의 회의 를 기다리고 있는 루스벨트 룸으로 갔다. 루스벨트룸은 미국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곳으로 이곳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 역사적인 방에서 빌은 미국의 의료비를 적게하고 전 미국인이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을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될 의료 개혁안을 100일안에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에 힐러리를 임명하고 위원들은 각부처의 장관과 예산국장, 그리고 수석 참모들로 이루어 졌다. 힐러리가 위원장으로 임명된것은 백악관과 행정부 내에서도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여 졌다. 사실 모두 힐러리가 국내 정책고문이나 교육이나 아동문제를 다루는 분야에서 일할것으로 예상했다. 힐러리는 알칸사스에서의 경험을 살려 의료개혁이라는 새로운일에 도전 하였을때 한껏 들뜨고 희망에 차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빌이 발표한 마감 시간이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통령의 계획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의원들이 독자적인 개혁안을 내놓기 시작했고 의료 개혁에 대한 접근방법이 다양하기때문에 국회에서도 의견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다. 하원의 게파르트 원내총무(공화당)는 예산 조정안에 의료개혁안을 첨부하여 제출해야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보장 정책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법률을 제정 하기위하여 그 수단을 전례없는 방법으로 이용할것을 제의했다. 상원의 원내총무(민주당)인 조지 미첼도 게파르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의료개혁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의원들이 있어서 설득 해야했다. 위원회의 '태스크 포스'(Task force) 팀은 600여명으로 이루어졌으나 실무팀은 너무 규모가 방대하여 일부는 소외감을 느끼고, 또 다른 일부는 실망하여 아예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되도록 많은사람을 포함시켜 그들의 입장을 강화 시킬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약화 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2월 24일 힐러리는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았다. 의료산업과 관계가 있는 단체가 의료 개혁위원회를 소송하였다. 그들은 힐러리가 국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위원장을 맡는것은 물론, 비공개 회의에 참석하는것 조차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작업을 교란시키기 위하여 비공개 회의를 공개 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비밀 회의를 하고있다는 인상을 대중들과 언론에 주기위해 교묘한 정치적 술수를 쓰고 있었다. 그직후에 그녀는 더 나쁜 소식을 버드 상원의원으로 부터 들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민주당 사절들이 버드 의원에게 법안을 예산 조정안에 포함시켜달라고 부탁 했었는데 버드 의원은 절차상의 문제와 예산 조정안을 토의할수 있는 시간이 20시간 밖에 없어서 그렇게 방대한 규모의 개혁안을 심의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고 예산 조정안에 포함 시키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녀가 상원의원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버드 의원의 판단에 수긍이 가지만 그때는 엄청난 정치적 좌절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미국의 사회보장 정책과 경제 정책을 바꾸어 놓을 의안을 마련하는 일을 너무 서두른 결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3월 중순에 하원이 빌의 경제 활성화 계획안을 통과 시킨것은 약간의 성공이었다. 20명 정도가 백악관 식당에서 작은 축하 파티를 열어 웃고 떠들며 담소하는 중에 캐럴린 휴버가 들어 오는것을 보았다. 캐럴린은 힐러리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아버님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셨으며, 입원해 계십니다" 하고 말했다. (다음에 계속)
출처 : 향이그윽한 애니의 홈입니다..
글쓴이 : Ann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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