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동관과 서관 (East wing, West wing)
백악관은 대통령이 거주하는 집과 집무실, 부속실 그리고
또한 박물관도 있으며 백악관의 문화는 잘 짜여진 군대와 같다.
또한 오랜동안 근무해온 일꾼들에 의해 잘 가꾸어지고
보존되어 왔으며 대통령들은 백악관의 잠정적인 거주자들
일 뿐이며 일하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다.
25년을 넘게 일한 집사도 있다.
백악관의 전화 시스템은 한세대 전으로 퇴보한
교환수를 통해서만 외부와 연결할수있는 수동식이었다.
그러나 힐러리는 새로운 설비로 교체된 뒤에도
계속 교환수를 통해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경호원이 대통령침실 문밖에 상주 하였으나
힐러리는 밤새 심장마비라도 일으키면 어쩌겠는가?하고
걱정하는 경호원들에게 클린턴은 이제 겨우 46살 밖에 안되고
매우 건강하니 염려 말라고 설득하여 1층에서 경호를
하게 하였다.
힐러리는 대통령선거 막판에 합류하여 도왔던
매기 윌리엄스의 도움이 절실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끝내야하는 그녀를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는다.
힐러리가 도와 달라고 애원하고 간청을 하여
그녀는 정권인수 작업을 진행 하는동안에 협력하였다.
그리고 후에는 힐러리의 비서실장으로 행정부에 참여하게된다.
힐러리가 우선 해야할일은 스탭진을 구성하는 일이었고
그동안 전해 내려오던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을 배우는 일이었다.
투르만 정부 시절부터 동관(동편건물, East wing)은 영부인과
그녀의 스탭진들이 사용 해오던 1,2층의 사무실
그리고 큰 접견실과 영화관이있다.
세월이 가면서 영부인들은 사무실을 확장하고 더욱 전문화
시켰으며 영부인들의 임무가 늘어감에 따라 인원도
더욱 많아졌다.
재키 케네디가 독자적으로 공보비서를 처음으로 채용하였고
존슨 부인은 서관(West Wing)을 본떠서 보좌진을 체계화 했다.
카터부인은 그녀의 비서실장을 매일 대통령 참모회의에
참석케 했으며 레이건 부인은 보좌진의 규모와 중요성을
확대 시켰다.
서관은 대통령 집무실 (Oval Office)이 있는곳이며
루스벨트룸, 각료회의실, 상황실, 백악관의 연회장,
그리고 핵심참모들의 사무실이있다.
나머지 직원들은 길건너에 있는 구행정부 건물에서 근무한다.
역대 영부인이나 그 참모들은 서관이나 구행정부 건물에
사무실을 가진적이 없었다.
그러나 힐러리는 그녀의 일부 참모진이 서관의 대통령 참모진에
참여하게 될터이기에 물리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정권인수팀에게 요구하여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관의 2층에
그녀의 방을 배정 받았다.
이것은 백악관 역사상 전례없는 일이었기에 코미디언과
정치평론가들은 T.V.심야프로에 나와서 비아냥 대기 시작했다.
어떤 만평은 2층에서 대통령의 집무실이 생겨나는
그림을 그렸다.
스무명에 이르는 그녀의 참모진은
국내정책담당 보좌관,연설문 작성자,공보비서, 일정 담당자,
여행관리자, 일지 편집자가 있었다.
시일이 감에따라 그녀의 참모진은 비서실장인 매기와 차장인
멜라니의 리더십 덕분으로 정부내에서 그리고 언론으로부터
적극적이고 영향력있는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다.
그결과 그녀의 참모들은 곧 백악관 주변에서
힐러리 랜드 ("Hillary Land")로 불리게 되었다.
취임식이 끝난지 열흘만에 최초의 큰행사인 전국 주지사협의회
만찬을 성공리에 끝냈고 1월 26일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민간 여객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가 "루이스 하인상"을
수상하고 공립학교를 방문하고 개인적으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를 찾아가 점심을 함께한다.
잭클린은 일찍부터 클린턴을 지지하여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으며 힐러리는 백악관의 기품과 우아함과
지성을 가져온 영부인인 그녀를 존경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재클린은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젊은 대통령의 부인으로
서른한살때와 다름없는 미모와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1963년 케네디가 서거한후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하였고 뉴욕에서 유명한 출판사의 문학담당 편집자로
활동했다.
힐러리는 아직까지 그렇게 많은 책으로 아파트를 장식한
사람을 본것은 재클린 뿐이었다.
재클린은 그녀에게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고 특히
첼시아의 교육문제들을 얘기해 주었다.
첼시아를 버릇없는, 특권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지 말며
가능한 기자들로부터 떼어놓고 누구도 첼시아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것을 말해준다.
힐러리는 공립학교를 옹호하는 이들의 실망을 이해 했지만
첼시아를 위해서 언론이 사유재산 이기에 접근할수없는
시드월 프렌즈 사립학교를 택하였다.
재키는 개인 소유의 집도 없는 힐러리에게 캠프 데이비스
(대통령 전용별장)를 이용하여 휴가를 보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친구들의 이야기, 패션에 관한것등을 진지하게
이야기 하였으며 재키에게 유명한 컨설턴트한테 자문을 받아서 철저하게 변신하면 어떠하냐?고 물어보았는데 뜻밖에도
재키는 남에게 맞기면 그것은 남의 생각을 몸에 걸치게
될것인즉 당신은 당신만의 개성이 있는 당신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것에 정신을 집중시키라고 말한다.
두시간을 담소한후에 재키는 언제라도 연락하고
상의하고 싶은것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말했다.
그이후 16개월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재키는
힐러리에게 계속 영감과 도움을 주었다.
하루는 웃지못할 일이 백악관 2층 가족식당에서 발생했다.
첼시아가 몸이 안좋아서 전부터 잘 해주던 스크램블 에그와
애플소스를 만들어 주기위해서 주방장에게 재료와 집기들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더니 주방장은 자기가 해준 음식이
마음에 안들어서 영부인이 직접 만들려고 하는것으로 생각하며 당황해 하였으니 함부로 음식도 만들수 없었다.
백악관의 비밀검찰국은 경호 대상자를 암호명으로 부른다.
빌은 독수리(Eagle) 힐러리는 상록수 (Evergreen)
첼시아는 활력 (Energy) 이라는 암호명을 가지고 경호를
철저하게 했다.
케네디 행정부이래 백악관 주방은 프랑스 요리사들이
지배해 왔다.
힐러리는 미국인 주방장으로 교체하라고 권하는 말을 듣고
월터 셰이브를 주방장으로 채용하였고, 그는 담백하고
싱싱한 재료를 특징으로하는 미국요리 전문가였다.
2월초에 힐러리는 친구 메리 스틴버겐의 40회 생일파티를 위해
백악관 2층 가족식당에서 비공식 만찬회를 조촐하게 열었다.
백악관 법률 부고문인 빈스 포스터를 비롯한 가까운 참모진들을
초대하여 몇시간동안 근심걱정을 다 잊어버리고 여러가지
주제로 환담을 나누었다.
지금도 빈스의 모습이 선하지만 그때 빈스가 의자에 기대앉아
빙긋이웃던 모습이 떠오르며 피곤하지만 행복해 보였다.
그순간에는 그가 워싱턴 정가의 새내기로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해 있었는지 그녀는 짐작도 할수없었다.
(다음에 계속)

'힐러리 자서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힐러리 자서전을 읽고 #8 (0) | 2008.12.12 |
---|---|
[스크랩] 힐러리 자서전을 읽고 #7 (0) | 2008.12.12 |
[스크랩] 힐러리 자서전을 읽고 #5 (0) | 2008.12.12 |
[스크랩] 힐러리 자서전을 읽고 #4 (0) | 2008.12.12 |
[스크랩] 힐러리 자서전을 읽고 #3 (0) | 2008.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