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워터 (WHITEWATER)
1993년 할로윈 데이에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를보고
과거의 일이 망령처럼 되살아났다.
맥두걸과 그의 부인 수잔과 함께 "화이트워터 개발회사"를 그들은
동업으로 차렸지만 빌과 그녀는 그회사에 투자함으로 손해를 보았다.
동업했다는 관계로 맥두걸이 특혜를 받았다는 신문지상의 보도에
빌은 그일에 말려들게 되었으나 곧 근거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그 신문기사는 곧 꼬리를 감추었었다.
이제와서 그일이 재 등장하게된 정치적인 이유를 미쳐 깨닫지 못했고
어디까지 끌고 갈지도 예측하지 못했다.
특별검사 조사에 7천만 달러가 넘게 쓰였지만,
빌의 불법행위는 들어나지 않았다.
조사의 목적은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정부의 힘을 꺽는 것이었으며,
빌이 잘못 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것 뿐이었다.
그후 화이트워터는 그들의 정적들이 모든 공격에 이용할수있는
무기가 되어 처음부터 대통령 임기가 끝날때까지 계속되었다.
할로윈데이에 나온 "워싱턴 포스트"기사와 뒤따라 나온
"뉴욕 타임스"기사를 읽고 빌과 힐러리는 데이빗 켄들을
고용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 하기로 하였다.
데이빗은 모든서류들을 검토하고 짐 맥두걸의 투자를 추적하면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하여 화이트워터 부지까지 답사하였다.
데이빗은 화이트워터의 현소유자를 추적하여 빌에게 알리지도 않고
다른사람에게 넘겨진 사실과 수익금을 혼자 챙겼다는것을 알아내었다.
맥두걸은 매디슨 신용금고를 차려서 부동산을 담보로 적은돈을
빌려주는 대출금융업체로 시작하였다.
그후에 레이건 행정부가 상호신용 금융업체의 규제를 완화하자
큰돈을 빌려줄수 있게되자 무모한 대출로 결국에는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게 되었고 맥두걸이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있었기 때문에 연방 감독기관은 맥두걸의
부정을 이유로 신용금고를 접수하고 맥두걸을 해임시키고
회사의 거래 내역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연방정부의 조사와 형사고발에 맥두걸은 몇년동안 시달렸다.
빌은 맥두걸과 8년동안 동업을 한이래로 그를 믿고
장부를 본적도 없었으며 계속 투자를 하였으나 손해만 보고 있던차에
맥두걸이 빌의 지분 50%를 양도하라는 제안을 받고 몇가지 조건을
내걸었으나 맥두걸은 주저하였다.
그동안 빌과 힐러리는 투자를 잘못하여 금리가 치솟을때 별장을
사들였으며,손해본 투자를 회복할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야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동업자 관계를 지속하였으나 후에 서류등을
검토하고 분석한후에 그녀는 화이트워터 사업기록은 엉망이고
그사업은 실패라는것을 알았다.
맥두걸은 화이트워터의 그동안 실적에 따른 세금은 한푼도
내질 않았기에 힐러리는 세무서에 맥두걸부인의 도움으로
세금보고를 하였는데 맥두걸은 이에 앙심을 품고
힐러리 사무실로 전화하여 협박하였다.
맥두걸은 음모와 사기, 허위진술과 회계부정등 여덟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뒤에 더욱 빌에게 적개심을 품었다.
우여곡절끝에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후에 계속 빌과 힐러리를
협박하였으며 화이트워터 세금신고서를
보고한데 대한 보복을 암시하였다.
셰필드 넬슨은 빌의 상대로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그이유로 복수심에 불타 빌이 대통령선거에서
떨어지도록 맥두걸을 이용하였다.
그것이 처음으로 발단이 된것이 "화이트워터" 기사였다.
그 기사는 1992년 3월 민주당 예비선거가 있기전에
"뉴욕 타임스" 일요판에
"클린턴부부, 신용금고 운영자와 오자크에서 부동산 투기하다"라는
1면 기사로 실렸다.
맥두걸은 빌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으며 그 보답으로
특혜를 받았다고 허위 정보를 흘렸다.
이에 대비하기위해서 클린턴 선거대책본부는 짐 라이언스를
법률고문으로 고용하였으며 라이언스는 화이트워터 투자에대한
기록을 모으고 설명하기 위해 회계사를 고용하여 4만6천달러의
투자손실을 입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신문에 라이언스 보고서를 공개한 뒤로는 신문에서는 기사가
잠시 사라졌지만 공화당원과 반대파 세력들은 결코 포기하지않고
대통령선거 몇주전에 깜짝쇼를 터트릴 계획이 후에 드러났다.
힐러리가 보기엔 이일은 별로 스캔들이 아니었기에
곧 사라질줄알고 추수감사절을 보내기 위해서
캠프 데이빗으로 휴가차 떠났다.
그녀는 시어머니인 버지니아를 동행했으며
버지니아는 암이 재발하여 건강이 안좋았으나 언제나 곱게 화장하고
태도는 적극적이었으며 건강해 보였기에
그녀의 건강상태가 심각한지를 모르고 있었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전통적인 음식으로 해군에 속해있는
요리사와 급사들이 마련하였으며 즐거운 추수감사절
휴가를 지내고 워싱턴에 돌아왔다.
1993년 11월30일 빌은 부시대통령이 반대하던
"브래디 법안"에 서명하였다.
그 법은 1981년 정신이상자가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쏜 총에 백악관 언론비서였던 브래디가 맞아
두뇌손상을 입어 불구자가 된일이있어서
총기를 구입하려면 신원조회 기간인 5일을 기다려야하는 법안이다.
총기규제법안에 25년을 매달려온
브래디 부부에겐 실로 감동적인 장면이 되었다.
1993년 12월 8일엔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비준 되었기에 이로써
정부는 모든 관심을 의료개혁 지원에 돌릴 수 있게되었다.
힐러리는 쿠프박사와 순회에 나서서 클린턴 개혁안의 장점을
설명할수있는 T.V.공개토론회에 참석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워싱턴으로 돌아오니 크리스마스 시즌이 닥아와 준비해야했다.
지난 5월부터 미리 준비한 덕분에 카드와 크리스마스 장식,
파티계획등이 몇달에 걸친 준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크리스마스는 클린턴집안의 큰행사로 쇼핑하고, 선물포장하고,
부녀가 함께 트리 장식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빌의 어머니인 버지니아에게는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몰랐다.
빌과 힐러리는 될수있는대로 어머니와 함께
많은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백악관에서 함께지내자고 설득하였지만,
버지니아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바브라 스트레이샌드의 음악회에 초대받아
가야하기에 새해까지는 함께 있을수 없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바브라의 공연을 보고 카지노를 구경 다니는것만큼
즐거워한 일이 없었기에 그때까지 힘들지만 버티고 있는것 같았다.
여전히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그리고 "뉴스위크"지가
화이트워터에 집착하여 서로 특종경쟁을 벌였다.
공화당 의원들은 재조사를 요구했고,
언론의 논설위원들은 특별검사를 임명하라고
재닛 르노 법무장관을 닥달했다.
이어서 빌과 힐러리는 기막힌 당파적인 공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12월18일 데이빗 켄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데이빗 브록이
쓴 기사가 매달 정기적으로 정부를 공격하는 우익 월간지인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에 실릴 더럽고 추한
기사를 요약하여 말해주었다.
브록의 주요 정보원은 빌의 경호원출신인 아칸소주 경찰관 출신
네명이었으며 빌이 주지사 시절에 자신들이 빌에게 여자를
조달해주는 역할을 하였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으나,
1998년에 브록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기사를 쓴 정치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고백하며
그 자신이 퍼뜨린 거짓말에 대하여 공개 사과하였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전 어느 추운날 아침에 힐러리는
매기 윌리엄스 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매기가 "U.S.A. Today" 잡지를 보여주며
"당신과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는군요" 라고 말했다.
힐러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를 몰랐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공정함과 동정심을 잃지않으려고 노력하듯이,
모든 미국 국민들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것 뿐이었다.
(다음에 계속)
사계절 애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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