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자서전

[스크랩] 힐러리 자서전을 읽고 #12

Annylee 2008. 12. 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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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변호사 (INDEPENDENT COUNSEL)


1994년 1월6일 새벽에 빌의 어머니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빌의 어릴적 친구이자 힐러리의 친한친구인 패티에게 
딕(빌의 의붓아버지)과 함께 장례식 절차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침 뉴스에는 빌의 어머니의 사망소식이 뉴스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힐러리는 뉴스를 듣자 시어머니의 사망 사실을  실감 하게 된다.
사망사실을 알리는 뉴스에 이어서 밥 돌과 뉴트 킹리치가 <투데이>의
토크쇼에 출연하여 화이트 워터에 대해 이야기 하며 밥은 "특별검사
(Special Prosecutor)를 임명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 했다.
빌은 그것을 보고 괴로워했으며, 나중에 밥의 귀에 빌이 그날 한이야기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 들어가서 밥이 빌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다.
빌은 그날 밀워키에서 연설할 계획이었으나 취소하고 
앨고어 부통령을 대신 보냈다.
힐러리는 첼시와함께 시어머니가 살았던 핫스프링스로 날아갔다.
바브라 스트레이샌드를 비롯해서 수많은 조문객이 왔으며 
아칸사스의 초상집에서는 많은 음식을차려 손님을 대접한다.
핫스프링스에는 수많은 인원을 수용할수있는 교회가 없어서 
시내의 컨벤션 센터에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장례예배를 마친후 호프에 있는 부모와 첫남편 빌 브라이스
묘지에 함께 안장 되었다.
Air Force One (대통령 전용비행기) 를 타고 친척,친구들과함께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빌은 화이트 워터의 걱정뿐이었다.
그날밤 빌은 유럽으로 가서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회의에 
참석하고 난후에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여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회담하기로 되어있었다.
빌이 유럽으로 떠나면서 힐러리에게 
화이트 워터의 일을 빨리 해결하라고 부탁하였다.
힐러리는 1월13일에 모스크바에서 합류하기로 되어있었고
첼시아도 데리고 갈 계획이었다.
특별검사 임명이 적법한 조치이거나, 필요한 이유에 대해선 
아무도 정확히설명을 하지못 하였지만,언론에서나 민주당 
지도자들은 T.V.토크쇼에 나가서 특별검사 임명을 지지하였다.
힐러리는 더욱 난처해졌고, 
특별수사는 범죄행위가 행해진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증거도 없이 특별검사를 임명하는것은 
추후에도 대통령이 혐의가 있던 없던 문제가 제기 될때마다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하게될 나쁜 선례를 만들것이었다. 
특별검사를 반대하는 힐러리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데이빗 캔들과 버니 너스봄과 데이빗 저겐 세사람 뿐이었다.
모든이들이 힐러리에게 찾아와 압력을 넣으며 특별검사 요청에 
동의하지 않으면 남편을 망치게 되며, 
신문의 1면기사에서 화이트 워터 사건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특멸검사 요청은 실수하는것 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생각을 바꿀수는 없었다.
그녀는 빌과의 전화통화에서 여러상황을 빌에게 설명했으며
빌은 어렵게 특별검사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주위의 강한 압력에 의해서 원하지도 않는 결정을 내린후에
참담한 심정이었다.
힐러리는 나중에 특별검사 요청을 좀더 강력하게 맞서 싸워 
받아드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것을 하고 후회하였다.
그들의 정치적 당면문제를 다른곳으로 돌리고, 
빨리 해결하기위해 추진한 응급조치가 그후 7년간 정부를 약화시키고,
많은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내외의 당면한 어려운 문제를 외면하게 하였다.
러시아 방문길에서 보리스 옐친 영부인 나이나 (Naina)를 만나서 반가웠고,
빌의 러시아 방문목적은 옛 소련의 핵무기 해제와 나토의 확대 같은 문제를
서로 상의할 수 있도록 관계개선을 하기 위함이었다.
저녁에는 옐친대통령부부가 초대한 성 블라디미르에서의 만찬에 참석했고 
옐친 내외가 크렘린 궁전의 공개되지 않은 지역을 구경 시켜 주었다.
그곳에서 하루밤을 묵은후 벨라루스의 민스크로 향했다.
민스크는 아주 음울한 도시로 공산독재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으며, 쿠로퍼티 기념관에서 스탈린의 비밀경찰에의해 살해된 30만명의
영전에 헌화하였다. 
벨라루스에는 구소련의 공산 독재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언론자유와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1994년 1월20일, 클린턴 정부 1주년 기념일에 법무장관은 공화당원이고 
공정한 변호사로 이름난 로버트 피스크를 특별검사로 임명하였다. 
며칠후에 빌은 연두교서를 발표하며 전국민에 대한 보편적 의료보장을
포함하지 않는 의료개혁 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1994년 힐러리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로 
미국선수 대표단을 이끌고 혼자하는 최초의 공식 해외여행을 하였다.
첼시아도 동행한 여행은 아주 즐거웠고 릴레함메르는 그림처럼 완벽한
동계올림픽 개최지 였다.
노르웨이의 브른트랜 여성총리는 힐러리를 아침식사에 초대하였고
식사중에 브룬트랜 총리가 미국의 의료개혁안을 읽어 보았으며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어 그순간부터 힐러리의 평생친구가 되었다.
브른트랜은 후에 정치를 떠나 세계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예상대로 특별검사 임명은 며칠동안은 화이트워터 사건을 잠잠하게 
하였으나 며칠후에는 새로운 고발과 루머로 스캔들의 공백을 메웠다.
몇몇의원들은 하원과 상원에서 화이트워터 의혹을 조사하기위한
청문회를 열자고 요구했다.
힐러리는 화이트워터에 대한 수사와 질문을 전담할 대책팀을 구성하여
해럴드 아이크스를 책임자로 내세우고 팀을"재난관리팀"으로 명명하였다.
그이유는 연루된 참모들이 행정부의 일에 전념케하고,
여러사람이 관여하게 되면 누가 책임질 사람이 없으며,
어떤사태에 미리대비하기 위해서 조직적인 체계를 갖출필요가 있으며,
변호사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여러명이 불안속에 지내게 될것이었다.
힐러리는 클린턴이 그의 임무에만 충실할수있도록 중요한 일 이외에는
혼자 처리하였다.
1994년 4월말에 그녀는 화이트워터의 스캔들외에 여러쟁점을
야기시킨것에 대하여 언론에 모두 말하기로 하고 기자회견을 제의하였다.
기자회견을 하면 모든질문에 답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4월 22일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기자들이 더이상 질문할것이 없을때까지 대답하고 또 대답하였다.
힐러리는 기자들이 그녀에게 모든것을 
이야기 할수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마웠고, 
기자회견을 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모든것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아서 언론이 
그녀를 오해하여 무엇인가 감추려고 한다는인상을 주었기에 
그런인상을 씻어주는 계기를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난후에 그녀는 데이빗 켄들과 서쪽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모든사람들이 잘했다고 하겠지만 결국 기자들은 계속 그녀를 추격하여,
무엇인가 찾아낼것이므로 좋은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날밤, 4일전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리처드 닉슨이 81세로 타계했다.
닉슨대통령이 20년전에 의료체계를 바로잡으려고 애썼으며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라고 이야기 하던 생각이 났다.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기사에 실린 한여자 가운데 "폴라" 라고만 
거론되어진 여자가 자기친구를 비롯한 식구들이 자기와 빌 클린턴이 
컨벤션중에 호텔에서 만나고, 빌의 정식 여자친구가 되고싶다고 
말한것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힐러리는 곧 이사건도 다른 스캔들처럼 곧 사라질줄 믿었는데
폴라 코빈 존스는 빌 클린턴을 상대로 성희롱죄로 7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게임은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 법정으로 옮겨갔다.
(다음에 계속)  


사계절
애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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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Ann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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