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글

[스크랩] 울엄마

Annylee 2006. 3. 10. 09:54
울엄마

엄마와 단둘이서 밤을 쪄서 나누어 먹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노라니 엄마의 얼굴에
지나온 세월 만큼이나 생기신 주름이
내 시야에 들어와 코끝이 찡함을 느낀다.

며칠전에 시골에서 추석을 서울 큰오빠 집에서
보내시느라 상경하신 엄마를 내가 우리집으로 모셔왔다.

86세의 노모께서 혼자 시골에서 사시는데
고집 불통이시라 서울에 모시고져 자식들이
갖은 수단, 방법 다 해 보아도 막무가내로 안 통하시는 울엄마...

큰아들 며느리가 뫼시러 가도 고집 부리시고
서울에 안 올라 오시는 울엄마...

혼자 사시면서 아버님이 남겨 놓으신 부동산을 혼자 관리 하시면서
자식들에게 신세 안 지시겠다는 울엄마...

그 연세에 기억력도 좋으셔서 우리들 전화번호
다 외우시고 핸드폰으로 전화 하셔서 쩌렁 쩌렁 울리게
큰 소리로 안부 먼저 하시던 울엄마...

서울 오실때 오 남매한테 주실 시골 특산물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던 울엄마...

내가 가면 환한 웃음으로 그렇게 반겨 주시던 울엄마...

고등학교 3학년때 입시공부 하느라 여념이 없는 나에게
밤 12시경이면 어김없이 밤참을 차려 주시느라 안 주무시던 울엄마...

5남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우리를 모두 잘 키워주신 울엄마...

그중에 막내딸인 나를 특히 사랑해 주신 울엄마...

~~~울엄마...
.
.
~~~울엄마...

울엄마의 모든것을 어찌 다 표현할수 있으리요.

그런 울엄마가 요즘 노인성 우울증에 걸리셨다.
도무지 말씀을 안하시고 웃음도 사라지고 식사도
잘 안 하시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억지로 추석을 핑계 삼아서 서울로 모셔 오긴했는데
아직도 시골 가셔야 한다고 우기고 계시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동안 내가 곁에서 함께 지내왔으나 지난 5월이후로 서울에 많이 있었고
여름내내 중국에 있느라고 엄마곁을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
엄마는 간간이 "네가 없으면 못살것 같아"라고 말씀하실때
그냥 흘러 듣고 지나쳤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신것 같아서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유난히 막내딸을 좋아하시는 울엄마는 다른 자식들은
중학교 마치면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는데
나는 소위 말하는 서울의 명문 여고 입학시험에서 낙방하여
시골로 내려와 엄마와 함께 지냈으니
다른 자식 보다도 더욱 마음이 통하고 애착이 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엄마의 마음을 그래서 제일 잘 알고 이해를 잘하므로
엄마는 나하고 계신것이 제일 편하고 좋으신가 보다.
큰 오빠집에서 며칠 계시길래 "엄마 우리집에도 오세요"
하고 여쭈었더니 금새 "언제 나 데리러 올래?하고 물으신다.
엄마가 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신것 같은 죄책감에
우리집으로 모셔와서 잘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모셔와 요즘며칠 함께 지내느라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집에서 엄마 말동무 해드리고
요것조것 잡수실만하고 좋아하시는 음식을 해드리고 있는데
덕분에 살이 더 찌는 느낌이다.

노인성 우울증은 외로움에 못 견디면 걸린다고 하며
식구들이 함께 지내면 곧 좋아진다고 한다.
그동안 자식들이 교대로 엄마 보러 일주일 간격으로
내려 가곤했는데 그것도 모자라셨나보다.

서울에 오신 이후로 혈색도 좀 좋아지고 있으며
말수도 좀 늘으셨는데 아직도 혼자 계시면 안 될텐데
일주일만 더 있다가 다시 시골로 내려가신다고 하여
어찌 막을수 있을지 걱정이다.

멍하니 소파위에 앉아 계시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변한 모습에
가슴저리고 측은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걱정만 앞선다.
아무리 붙잡아도 막무가내이신 울엄마를 어떻게 해야할지....
자식들이 모실려고해도 시골을 고집하고 계시니...
시골 내려가시면 우리가 교대로 또 시골을 왕래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만만치 않은데...
가정부를 두어 드리겠다고 하여도 막무가내이시고 ...

오늘 엄마 목욕 시켜드리면서 앙상한 엄마의 몸이
그 옛날의 모습이 아니어서 눈물이 핑돌아 말을 못했다.
늙어가는 몸을 어찌 막을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되겠지?
미국의 영화배우 나타리 우드는 늙어가는 자기의 모습이
추하게 보일까봐서 자살을 했다나? 이해가 간다.
우리는 그렇다고 늙음이 두려워서 미리 죽을수는 없잖은가?

이제 얼마 안남은 엄마의 여생을 좀더 편안하고
즐겁게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져 보지만
효도 한다는것이 참으로 어려운것 같다.


10월 5일에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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