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1969년 예일대학 법학과에 입학할 당시에는
전체인원 235명 중에서 여학생은 27명이었다.
예일법대의 교육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사회에 나가서 실제로 사용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실전교육이었다.
그당시 대통령 닉슨은 캄보디아에 미군을 투입하고
월남전을 확대하여 학교 내에서도 반전데모가
그치지 않았으며 반전데모는 결국 켄트대학생
4명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하여 더욱 확산되었다.
그녀는 어느 단체에 초빙되어 연설을 하였는데
닉슨 정부의 부당한 월남전 확산은 불법이며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역설하였다.
1971년 봄에 클린턴을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클린턴은 영국의 Oxford 대학에서 2년간 공부한후에
70년 가을학기부터 예일 법대로 돌아왔다.
그는 키가크고 핸썸했으며 곱슬머리에 붉은 갈색의
턱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꼭 해적같은 인상이기에
누구에게나 눈에 띄었다.
힐러리와 클린턴이 처음 만난곳은 도서관에서였다.
도서관에서 클린턴이 친구와 이야기 하는도중에
공부하고 있는 힐러리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것을
알아챈 힐러리는 클린턴에게
"그렇게 계속 바라보면 나도 널 쳐다볼꺼야."하는 말로
조우를 하지만 그 이후로는 서로 못 만나고 있다가
정작 같은반에서 종강하는 날에 우연히
다음학기 수강신청 하러가는길에 다시 만나게된다.
그이후로 그녀는 클린턴의 생각하는바와
생김새에 매료되어 갔으며,
그의 손목은 가늘고 손가락이 길어
피아니스트나 외과의사의 손같이 재능이 있어보였고
특히 그의 화술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녀가 감기에걸려 꼼짝을 못하고 있을때
그가 오랜지 쥬스와 치큰수프를 들고 찾아온것이
계기가 되어 급속도로 가까워 졌다.
그무렵 그녀는 클린턴을 만나기 전에 다른 남자친구가 있었다.
예일법대를 졸업하고 클린턴은 알칸사스 fayettville에 있는
법대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알칸사스의 여행자( Arkansas Traveler )
힐러리는 졸업후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좋은직장에서
일하는것에 만족하였으나 클린턴이 보고싶어서
그가 있는곳으로 이주를 결심하는 힐러리에게
동료들은정신이 나갔다고 만류를 하였다.
8월 무더운 어느날 저녁에 리틀록에 도착하니 클린턴은
상원의원에 출사표를 던지고 여러사람 앞에서 열심히
선거 캠페인 연설을 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인상적이라
감명이 깊었다.
힐러리는 알칸사스대학의 법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되는데
학생들이 한사람을 빼고 거의 나이가 비슷하거나
바로 아래 또래들이었다.
새학기가 시작 되자마자 클린턴의 세번째 의붓아버지(Jeff)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 하게되자 어머니(Virginia)는
다시 미망인이 되었다.
온식구들이 슬픔에 쌓였고 특히 열살이 아래인
클린턴의 동생 로저(Roger)는 아버지와 특별히
자별했던 관계로 충격이 컸다.
빌은 장례식후에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였고
힐러리는 대학에서 열심히 가르쳤다.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도 빌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52%대 48%로 실패하였다.
힐러리는 갈등에 쌓여서 여름방학 동안에 시카고와 동부로
친지들과 그녀에게 새로운 직장을 알선해준 사람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나며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기로 하였다.
길떠나는 힐러리를 배웅 하는길에 우연히 지나친 집을
그녀가 참 예쁘다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는데 후에 리틀락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고 와 보니 빌이 그집을 사서 헌가구로
집안을 장식해놓고 그집에 와서 같이 살것을 청한다.
힐러리가 실로 4년만에 청혼을 받아들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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