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 엄마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말 일 순간인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나 자신이 의기소침하여 외출을 삼가고 있던 차에
큰딸이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 치르고 난후 직장 나가기 전에
태국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함께 지낸 날들이 꿈만 같았다.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여름방학 동안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여
학비를 보태느라고 한국에 3년 동안이나 오지를 못했다.
큰딸애가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후에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이
텅 빈 느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허전한 마음 가눌 길이 없어 컴 앞에 앉아서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데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음에 너무나도 답답하였다.
나의 세세한 감정은 표현을 못하고 적당히 법률사무소에
출근하면 열심히 노력하여 인정받는 변호사가 되라는 식의 당부의 말과
집에 잘 도착하였는지 궁금하다는 정도의 글을 영문으로 보냈다.
그동안에는 일상의 일들에 언어의 소통에는 막힘이 없었으나 딸애가
이젠 어엿한 변호사가 되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편지에 쓰려고 하니 벽에 부딪혔다
내가 영어를 한다고는 하나 모든 표현을 한국말같이 할 수 없고
딸애가 한국말을 한다고는 하나 깊은 한국말을 다 이해할 수 없음에
언어 장벽에 부딪힘을 실감하는 아주 괴로운 시간을 경험하였다.
친구같이 또는 인생의 동반자처럼 함께 여행하고 옆에 누워 같이 잠자고
이야기하며 느낀 것은 그동안 많이 성숙 해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인으로 성장했음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이제까지 딸을 옆에 끼고 살지 않아서 깊은 대화는 많지 않아
인생의 전환점에 있는 딸에게 여러 가지 조언과 충고를 하며 아무리
설명하려 하여도 시시콜콜한 감정까지 나눌 수 없음에 가슴을 쳐야했다.
두 딸들이 미국에서 태어나서 엄마의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사춘기를 홀로 지내면서 외롭고 어려웠을 딸들을 생각하면
오늘의 딸들이 대견하기 그지없어서 그저 고맙기만 하다.
남편의 일로 서산에서 지낸 10수년의 세월이 아무 일도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허망하게 흘러갔음에, 제일 미안하고, 죄스럽고, 가슴 아픈 것은
남편의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다 보니
두 딸들에게 신경 쓰고 살뜰히 보살펴 주지 못 한일이다.
난 무엇을 위해서 딸들에게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살뜰한 정도 못주고 저희들끼리 있게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지금에 처해진 결과로 보아 생각하니
정말로 딸들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끼리 살면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모든
학업을 무사히 마쳐 딸들의 오늘이 있게 됨을 난 정말로 행복한 엄마라고
생각하며 두 딸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느낀다.
요즘은 큰딸이나 나 자신이 상대의 언어에 좀 더 가까이 갈수 있도록
인터넷 폰을 연결하여 수시로 한 두 시간 씩 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으니 나도 영어 실력이 늘어가고 딸애도 한국말을 좀 더 잘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음에 서로가 만족하고 있다. 그동안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들,
예를 들면 음식 만드는 것도 알려주고 서로의 정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딸애의 일과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히 장래 결혼상대자를 만나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직선적으로 장래의 남편감을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엄마는 장래의
사위 감은 이런 사람이 좋을 듯하다며 은근히 조건을 얘기해주고 나면
딸애도 솔깃하게 들어주어 고맙기만 하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만족하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딸애의 인생이니 우선은
서로가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이니 그런 사람이
나타나주면 한시름 놓을 것 같다. 공부를 늦게 까지 하다 보니
결혼적령기를 조금은 넘은듯하여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다.
이젠 제2의 인생기로 접어들은 딸이 엄마로서는 누구를 인생의
동반자로 만날 것인가가 제일 염려스러워 노심초사로 지낸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을 했더라도 반려자를 잘못 만나면 인생은
실패할 수도 있을 것 인데 앞으로 좋은 인연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큰딸애가 첫 월급을 받았노라 면서 한국에 있을 동안 잘해주셨던 친척 등
여러 식구들에게 일일이 선물을 못 보내니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달라고
돈을 보내주었다.
생각하는 것이 대견하여 벌써부터 식구들에게 딸 덕분에 인심 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 인다.
요즘에는 오라는데도 없고 그러니 자연히 갈곳도 없어 사회활동을 전혀
안하고 있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부족하여 글 쓸 소재가 생각 안 나고
이야기 거리가 없으니 딸애의 자랑만 늘어놓은 것 같아 나 역시 자식자랑
이나 하는 팔불출에 지나지 않는 영락없는 여느 엄마에 불과하다.
(서산문학지에 게제된 원고중에서)
2008년 11월 3일에
이 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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